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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잔등이 홀랑 벗겨진 길고양이 길고양이를 만나러 돌아다니다보면, 콧잔등이 벗겨진 녀석과 마주치곤 합니다. 눈 온 다음날 만난 이 녀석도 그랬습니다. 콧잔등에 점 두 개가 마치 딱지처럼 보이는 데다가, 콧잔등까지 털이 벗겨져서 인상은 좀 사납게 보입니다만, 길고양이에게 콧잔등이 벗겨지는 일은 흔한 것입니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고 흰 안광만 번쩍번쩍 빛나 보이는 것은 발아래 녹지 않은 눈이 반사되어서 그렇습니다. 위로 한껏 올려다보고 있어서 잘 안 보일 뿐이지, 동공은 저를 향해 있습니다. 콧잔등이 벗겨지는 건 그리 깨끗하지 못한 음식물 찌꺼기에 코를 파묻고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 일상생활 탓에 오염물질과 접촉이 잦아 피부병에 노출될 우려도 있고, 차가운 눈밭에 코를 대고 먹이를 구하는 탓도 있는 듯합니다. 고양이가 쉬는 자리는 쉽게 사.. 2010. 3. 14.
목을 180도 회전시키는 길고양이 따끈한 봄햇살을 쬐며 길고양이 한 마리가 낮잠에 빠졌습니다.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부스럭 소리에 잠을 깬 길고양이가 번쩍 눈을 뜨고 돌아봅니다. 얌전한 5:5 가르마를 탔습니다. 정면을 향해 있던 얼굴이 180도 회전해 등 뒤를 경계합니다. 모 공포영화에서 귀신 들린 등장인물이 몸은 그대로인채 목만 빙글빙글 회전시켜 뒤를 돌아볼 때처럼 거침이 없습니다. 고양이 몸의 유연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됩니다. 먹이를_노리는_매의_눈빛.jpg 인간이 휴식시간에 끼어드는 것이 싫었던지, 잽싼 발걸음으로 자리를 피합니다. 떠나가는 고양이 발바닥에 얌전히 달라붙은 곰돌이 모양 분홍젤리가 작별인사를 건넵니다. ---- ---- [인터넷서점 예스24 고양이액자 추첨 이벤트] 3월 16일까지, 예.. 2010. 3. 12.
등산의 달인, 산고양이를 만나다 호랑이도, 표범도 오래 전에 다 사라진 뒷산에는, 산고양이가 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밀려나 갈 곳 없는 길고양이들이 산으로 산으로 떠밀리듯 올라가는 것입니다. 한낮에는 바위로 올라가 햇빛을 쬐다가 어둑어둑해지는 저녁 나절이면 민가로 어슬렁어슬렁 걸어내려와 먹을 것을 구합니다. 꽃샘추위가 가시고 봄날씨를 되찾은 오후, 고양이를 만나러 마을 근처 뒷산으로 향합니다. 기다렸다는 듯 고양이가 바위 위에 식빵을 굽고 앉아 있습니다. 나도 그 햇빛 좀 같이 받아보자는 듯, 친구 고양이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옵니다. 편안한 자세로 널브러져 있던 노랑 고양이는 일어나 자세를 가다듬고 친구를 맞이합니다. 친구 사이에도 예의는 필요한 법이니까요. 햇빛에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식빵 두 덩이가 사이좋게 바위에 올라 앉아 있습니.. 2010. 3. 12.
길고양이의 '복층 원룸' 천막집 초대 겨우내 바람막이가 되어준 천막집 앞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망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가까이 다가가자 천막집 안으로 슬그머니 몸을 옮깁니다. 멀리 도망가지는 않고 살짝 고개를 내밀어 오랫동안 주시하는 모습이, 꼭 자기를 따라 오라고 초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눈이나 비 내리는 날 고양이들이 어떻게 겨울을 날까 궁금했던 차여서 큰 친분은 없는 사이지만, 염치불구하고 고양이를 따라가 봅니다. "우리 집을 최초로 공개하겠다옹~ 근데 빈손으로 오면 서운하다옹!" 눈빛이 고양이의 마음을 대변해줍니다. 며칠 사이 부쩍 추워진 날씨에 그만 감기에 걸렸는지, 콧물을 계속 흘리고 있어서 안쓰럽네요. 천막집 안으로 고개를 쑥 집어넣으니, 햇빛이 천막을 통과해서 신비한 푸른 빛으로 가득합니다. 겉보기보다 실내는 꽤 운치가.. 2010. 3. 11.
눈 온 날, 길고양이 마음은 소금밭이다 폭설 내리는 날이면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 -지금은 절판된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책입니다. 질 나쁜 소금을 입에 털어넣으면 입속을 가득 채우는, 텁텁하고 씁쓸하고 찝찌름한 맛. 마음이 그런 기운으로 가득 찰 때, 글쓴이는 도서관에 가서 마음을 달랩니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도서관에 가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소금밭 같은 마음이란, 벌어진 상처에 뿌린 소금처럼 따갑고 아린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상처 입어 아리고 쓰린 자리에 또 다시 따가운 소금을 뿌려대는 일. 폭설 내린 날 길고양이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고양이 등에 사뿐사뿐 내려앉는 눈송이는 달콤한 설탕이 아니라, 뾰족뾰족 네모나게 각이 진 소금입니다. 겨울이 다 지나갔나 하고 방심했던 길고양이들에게.. 2010. 3. 10.
물을 찾아 헤매는 어린 길고양이 어린 길고양이가 산더미처럼 쌓인 계란판 앞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어디론가 배달될 듯, 혹은 어딘가의 음식점에서 쓰려고 막 주문해놓은 듯, 꽤 많은 양의 계란입니다. 배고픈 고양이가 싱싱한 계란 냄새를 맡고 찾아온 것일까, 혹시 계란을 노리려나...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발톱만은 제법 날카로우니 계란 하나 구멍내어 쪽쪽 빨아먹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렵잖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어린 길고양이는 눈앞의 '신선한 먹을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린 길고양이가 이곳까지 온 목적은, 갈증을 해소해 줄 한 방울의 물뿐이었습니다. 몹시 목이 마른 듯, 고작 한 줌도 안될 고인 물을 허겁지겁 핥아먹습니다. 길고양이로 살면서 겨울 내내 먹기 힘든 것은 밥보다도 깨끗한 .. 2010.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