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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계 투명한 물로 가득 찬 스밀라의 눈동자에 방이 비친다. 회색과 흰색이 섞인 스밀라의 털옷과, 스밀라가 깔고 앉은 검은 배낭과, 스밀라를 찍는 나와, 등 뒤의 책꽂이까지. 고양이가 보는 세계를 내가 다시 들여볼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롭다. 그건 스밀라의 눈이 볼록거울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눈에 비친 조그만 세계의 무게를 떠올려보고, 그 세계를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켜야 할 소중한 대상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내는 게 아닐까 싶다. 2009. 6. 25.
고양이가 생각하는 책의 또다른 용도 오래간만에 스밀라의 근황을 전합니다. 잘 자고, 잘 놀고, 여전히 새벽 5시에 사람을 깨우네요T-T 발밑에는 어머니의 여권지갑을 깔개 대신 깔고, 저렇게 동그랗게 해 가지고 누워있습니다. 종종 사람들도 그렇게 합니다만, 역시 고양이도 책을 베개로 쓸 줄 아는군요^^ 눈이 스르르 감기는가 싶더니... 꾸벅꾸벅 졸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머리를 기댑니다. "난 머리로 책 내용을 흡수하고 있을 뿐이고~" 하지만 실제로 잘 때는, 베개 없이도 잘 잠든답니다. 살짝 앙다문 송곳니가 매력포인트. 2009. 5. 21.
좌절금지 자기 삶이 힘들면, 남의 고통에 감정이입할 여력도 없어지지요. 세상에는 웃으면서 남의 가슴에 칼을 꽂는 사람도 있고,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빈말로라도 힘을 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게 좋고 나쁜 것들을 더하고 빼고 나면 고통스러울 것도 기쁠 것도 없는 담담한 삶이 남지요. 가끔 인간에 대해 실망하지만, 인간이 싫다고 말할 수 없는 건 나 또한 누군가에겐 힘이 되었겠지만 누군가에겐 실망도 주었을 테고, 어떤 대상의 고통에는 쉽게 몰입되면서, 어떤 대상에겐 무심한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인간이라고, 아직까지는 믿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좌절금지. 2009. 4. 28.
스밀라의 언덕 거실에 방석을 쌓아두었더니, 스밀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풀쩍 뛰어올라 맨 꼭대기를 차지하고 눕는다. 털 붙지 말라고 봄 코트를 뒤집어서 깔아놓으니, 아예 원래부터 제 자리인 양 저렇게 누워있다. 방석 쌓은 높이가 사람 앉은키보다 높아서, 스밀라가 내려다볼 수 있다. 그윽한 눈으로 바라볼 때가 스밀라가 좋다.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고양이의 미소다. 2009. 4. 25.
길고양이 입양 3년, 내가 배운 것 “길고양이와 집고양이 종류가 따로 있나요?” 얼마 전 이런 질문을 듣고 조금 놀랐습니다. 길고양이 중에는 털 짧은 한국 토종묘가 많습니다. 반대로 펫숍 등에서 판매하는 고양이는 이른바 ‘품종묘’가 대부분이지요. 그래서 질문을 한 분도 집고양이, 길고양이 종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하지만 곱게 자란 집고양이도 버려지거나 길을 잃으면 길고양이가 됩니다. 반대로 길고양이도 새로운 가정을 만나 입양되면 집고양이가 되지요. 길고양이나 집고양이 모두 살아가는 환경만 다를 뿐, 고양이라는 본질은 같습니다. 첫 만남 때, 퀭한 눈매의 스밀라. 2006년 7월 처음 만나, 저와 함께 3년 가까이 함께 살고 있는 스밀라도 길고양이였습니다. 장마철에 길에서 헤매던 스밀라는, 구조된 후에 한 차례 입양과 파양을 거.. 2009. 3. 24.
고양이가 좋아하는 ‘손가락 인사’ 퇴근하고 돌아오면 스밀라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습니다. 스밀라가 좋아하는 ‘손가락 인사’입니다. 하루종일 저를 기다리느라 심심했던 스밀라는, 종종 현관문 바로 앞까지 뛰어나오곤 합니다. 고개를 쳐들고 저를 올려다보며 우엥 우는 스밀라를 보고 있으면, 고양이가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 속설이 다 옳은 것만은 아니다 싶습니다. 앞의 문장 속에는 ‘비교적’이라는 수식어가 포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외로움의 차이, 반가움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고양이에게는 혼자 보낸 시간만큼의 ‘절대적인 외로움’이 있을 테니까요. 비록 낮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어린 시절 낮잠을 자다가 문득 깨어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봤을 때, 아무도 없으면 .. 2009.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