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와 놀아주기 방문을 조금 열어두고 문틈으로 손가락을 꼼질꼼질하면, 스밀라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달려올 준비를 한다. 사냥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다. 턱은 땅바닥에 닿을 듯이 낮추고, 앞발은 짐짓 몸 아래 슬쩍 감추고, 엉덩이는 살짝 들고, 뒷발은 동당동당 제자리뜀을 하다가 순식간에 내달린다. 제딴에는 '들키지 않게 몰래' 시동을 거는 것이겠지만, 엉덩이를 실룩거리는 것만 봐도 녀석이 뛰어올 게 빤히 보이니 웃음만 날 뿐이다.우다다 달려온 스밀라 앞에서 얼른 손가락을 치우면, '아까 그 녀석은 어디 감췄어?' 하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올려다본다.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게 기울여 문틈 너머로 눈길을 주면서. 스밀라는 집에 사람이 있는 걸 알면 혼자 놀려고 하질 않아서, 문 앞에 앞발을 딱 모으고 앉아 고함을 .. 2008. 3. 2. 15만 원짜리 비닐 수십 만 대가 팔린 '대박 상품'이라는 음식물쓰레기 건조기를 샀다. 축축하고 퀴퀴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게 유쾌한 일도 아니고, 말려서 버리면 간편하고 좋을 것 같았다. 물건은 주문한 지 이틀만에 도착했다. 온라인 숍 고객 후기에는 배송이 늦다는 불평이 가득했는데 의외였다. 기대하면서 페트병에 모아 둔 음식물쓰레기를 붓고 건조기를 작동시키는데, 동생이 어이없는 얼굴로 나를 부른다. 1회 건조할 때마다 19시간을 연속 가동해야 한단다. 처음 듣는 얘기다. 사이트에 접속해 광고 페이지를 읽어보니 과연 '19시간 사용 시 한 달 전기료 2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말은 '한 달 동안 배출된 음식물쓰레기의 총량을 건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 내내 모두 더해서) 19시간' 정도이고, 전기료의 총합도 .. 2008. 2. 24. 소용돌이 다른 부위의 털은 아래에서 위로 흐르듯 떨어지지만, 콧잔등은 조금 다르다. 콧구멍 근처 양쪽으로 조그만 소용돌이가 생겨 빙글빙글 돈다. 폭신폭신한 이마의 주름진 곳이랑, 콧잔등의 짧은 털을 손끝으로 쓰다듬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2008. 2. 2. 초록색 불빛 스밀라가 골똘히 생각할 때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면, 초록색 불이 타오르는 것 같다. 차갑고도 따뜻한 불이 있다면, 고양이의 눈동자와 닮았겠지. 2008. 2. 2. 스밀라 스밀라의 불만스런 표정이 마음에 든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 같아서. 2008. 1. 11. 고양이털의 전설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 나를 가장 두렵게 했던 건 ‘고양이털의 전설’이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만나 힘든 점을 물으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모아 “고양이털이 많이 날려요” 하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까짓 고양이털이 날리면 얼마나 날리겠나 싶어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았다. 날마다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바닥을 닦아도, 고양이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양이털은 가늘고 가벼워서, 민들레 씨처럼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다가 호흡기로 빨려 들어가기도 한단다. 어렸을 때부터 기관지가 좋지 않았던 내게는 꽤 위협적으로 들리는 경고였다. 좀더 구체적인 사례를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한 애묘가는 매번 고양이털이 반찬 그릇에 날아와 앉는 통에, 날마다 반찬 삼아 고양이털을 먹는다고 했다... 2008. 1. 10.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