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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에 몸을 데우는 길고양이 이제 가을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바싹 말라버린 낙엽더미만 남아있으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12월로 접어든 요즘도 누렇게 변해버린 나뭇잎 사이로 붉은 기를 담은 단풍잎이 보입니다. 마른 단풍잎 색깔은 다 같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떤 것은 잿빛을 띤 분홍색이고, 어떤 것은 붉은색이 말라붙은 듯한 검붉은색, 어떤 것은 붉은 기를 다 토해내고 갈색으로 변해갑니다. 고양이 털옷이 저마다 다른 색을 담은 것처럼, 밀레니엄 고양이가 은신처로 삼은 이곳의 단풍잎도 고양이 옷을 닮아가나 봅니다. 아직 남아있는 붉은색의 온기만큼, 단풍잎 한 장 한 장이 핫팩이 되어서 고양이의 차가운 몸을 뜨끈뜨끈 데워주면 좋으련만 그저 부질없는 상상에 그칠 뿐입니다. 어렸을 때 배운 차가운 색, 따뜻한 색을 보면서 했던 상상 중에 '따.. 2010. 12. 16.
발라당 애교에 실패한 고양이 "앗, 할아버지다!" 거실을 지나가던 아버지를 발견한 스밀라가 애교 담은 발라당을 날립니다. 배를 드러내고 앞발을 90도로 접어 최대한 귀여움을 뿜어내는, 고양이 특유의 애교입니다. 무뚝뚝한 아버지도 스밀라의 발라당을 자주 보아서, 그런 행동이 애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고양이 애교를 어떻게 받아주어야 하는지까지는 아직 모릅니다. 고작해야 "저, 꼬랑뎅이(?) 흔드는 것 좀 봐라~" 하고 웃으며 내려다볼 뿐입니다. 스밀라가 꼬리를 탁탁 치는 게 아버지 눈에는 유독 귀여웠던 모양이지만, 스밀라의 복실하고 탐스러운 꼬리를 '꼬랑뎅이'라니 어쩐지 옹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아버지가 그 정도 표현이라도 하는 건, 스밀라가 아버지 마음에 그만큼 성큼 들어와 있기 때문이겠죠. 털 날리는 .. 2010. 12. 15.
그릇에 담긴 검은 고양이의 매력-도예가 조은정 도예가 조은정의 작업실은 2곳이다. 남들은 하나도 갖기 어려운 작업실이 2곳이라니. 한데 그가 작업을 두 군데서 하는 데는 사정이 있다. 여느 도예가들과 달리, 조은정의 작업실에는 가마가 없다. 대신 집에 가마를 뒀다. 지금 쓰는 작업실 공간이 협소한 편이라, 공방 겸 작업실로 쓰는 곳에선 수강생을 가르치거나 초벌구이한 기물에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을 하고, 가마에 굽는 마무리 작업만 집으로 가져가서 한다. 가마에 불을 때지 않을 때면, 고양이들이 전망대 삼아 창밖을 보는 캣타워로도 쓴다. 가마를 보호하는 철제 앵글에 마끈을 감아 발톱긁개를 만든 모습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도예가의 작업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조은정은 고양이를 키울 수 없던 10대 시절 때부터 차근차근 ‘고양이 가족계획’을 세웠.. 2010. 12. 14.
팔베개를 하고 자는 고양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무렵, 쉬는 시간은 거의 잠자는 시간이 되곤 했습니다. 10분도 못 되는 시간, 두 팔을 베개 삼아 잠시 눈을 붙이는 것 정도로 오래 묵은 피곤이 사라질 리 없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요즘도 베개를 벨 수 없어서 자기 팔을 베고 잠든 사람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듭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의 하나가 잠자는 일인데, 그것조차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니까요. 도저히 가지 않을 것 같던 그 시간도 결국은 지나가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더 이상 쪽잠을 자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했던 건 제 착각이었습니다. 학생에게는 학생의 사정이 있듯, 어른에게는 밤새워 일할 어른의 사정이 있더군요. 그런데 스밀라는 뭐가 피곤해서 저렇게 앞.. 2010. 12. 12.
나츠메 우인장 10권 사은품, 야옹선생 비치볼 틈틈이 모으는 만화책 시리즈 중에 '나츠메 우인장'이 있다. 예약주문하면 야옹선생 팬시 상품을 사은품으로 보내준다고 해서 일찌감치 주문했는데 휴대폰줄, 풍경, 비치볼 등이 있다고 하더니, 비치볼이 왔다. 일본에서 잡지 연재를 할 때 제작해서 배포하고 남은 사은품을 주는 듯. 비치볼이라고 해서 수박 크기만큼 큰 줄 알았더니 그냥 오뚜기 인형 크기네. 그래도 나름 레어 아이템이라 기념으로 보관해둔다. 나츠메도 좋지만, 야옹선생도 좋아하니까. 평소 말투를 보면 뻔뻔하고 식탐 많은 아저씨 같지만, 야옹선생은 은근히 속정 깊은 고양이라서 좋다. 야옹선생이 마다라로 변했을 때의 당당하고 힘찬 모습도 멋지다. 하얀 털을 바람에 날리면서 나츠메를 태우고 하늘을 나는 마다라를 보면, 스밀라가 생각난다. 스밀라가 마다라처.. 2010. 12. 11.
[폴라로이드 고양이] 105. 길고양이에게 금지된 것 고양이 작가 한 분을 만나고 돌아나서는 길에, 젖소무늬 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어느 가게에선가 내놓은 사료를 맛있게 먹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화들짝 달아납니다. 네 발 달린 동물의 빠르기를 두 발 달린 동물이 따라잡을 수는 없습니다. 실은 따라잡지 않는 게, 두근두근 떨리는 심장을 안고 달아나는 고양이에게는 더 안심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굳게 닫힌 셔터문처럼, 자신을 가둘지 모를 세상으로부터 달아나는 고양이. 길고양이는 자신에게 금지된 것이 너무나 많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뜻한 집, 맛있는 밥, 온전한 수명. 어디서 누구에게 태어났는지에 따라 그것은 온전히 고양이의 것이 되기도 하고 고양이에게 금지된 것이 되기도 합니다. 달아나는 고양이를 찍을 때면, 카메라를 든 손이 자꾸만 무거워집니다. 2010.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