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후기] 고양이 마음 담긴 한 장의 사진 촐랑촐랑, 두근두근. 둘 다 새끼인데, 둘의 심리상태는 사뭇 다르다. 아기 길고양이들의 까꿍놀이를 찍었던 날, 이 컷 외에도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그중에서도 이 사진은 두 길고양이의 상반된 마음이 대조를 이뤄서 좋았다. 유독 내 마음에 남는 사진은 그저 귀엽고 예쁜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아니라, 그 순간 그들이 느낀 감정을 적확하게 보여주는 사진이다. 고양이의 외모만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마음을 찍고 싶다. 길고양이가 속마음을 감추지 않게, 나를 바람이나 햇살처럼 대할 수 있게, 내가 고양이에게 편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인간의 기준을 내세워 그들의 삶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기, 적당한 선의 안전거리 두기. 고양이가 내게 보이는 경계심만큼, 나도 그들의 .. 2010. 5. 12. 아기 길고양이들의 까꿍놀이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 밑 빈 공간에서 놀던 아기 길고양이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눈동자가 예쁜 호박색입니다. 갑작스런 방문에 화들짝 놀란 아기 길고양이는, 얼른 건너편 지붕으로 달아납니다. "노랑이 없~다!" 대담한 건지, 숨는 게 서투른 건지, 지붕 밑에 얼굴만 쏙 감추고 자기는 없답니다. "응? 아직 안 갔냥?" 나 없다고 하면 시시해서 가버릴 줄 알았는데, 머리 위 인간은 엉덩이가 무겁게도 버티고 있습니다. "뭐 재미있는 거라도...헉! 인간이닷!" 얼룩무늬 아기고양이가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다가 눈치만 보고 잽싸게 머리를 집어넣습니다. 노랑이는 제가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안심했는지, 이제 여유만만한 얼굴이 되어 지붕 모서리에 입술을 비비고 있습니다. 노랑이가 해맑은 눈으로 저를.. 2010. 5. 12. 민들레꽃의 유혹에 빠진 길고양이 호기심 많은 어린 길고양이의 눈에, 민들레 꽃봉오리가 들어옵니다. 나뭇가지든 손가락이든, 일단 길고 뾰족한 것만 발견하면 턱을 비비고 보는 습성 탓에, 아직 채 피지도 않은 봉오리에 자꾸만 눈이 갑니다. 고개를 한들한들 흔드는 꽃봉오리가 "어서 턱밑을 긁어보렴, 시원할거야" 하고 어린 길고양이를 유혹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바닥에 뒹구는 흔한 풀들과 다른 향이 나는 듯도 합니다. 민들레의 유혹에 못이긴 고양이가 살며시 코를 들이밀어 봅니다. 힘차게 위로 불쑥 솟아오른 모양새와 달리 목에 힘이 없는지라, 민들레는 고양이가 코끝으로 밀면 밀리는대로, 그렇게 흔들거리기만 할 뿐입니다. 민들레 특유의 향기가 싫지 않았는지, 바로 옆 활짝 핀 꽃으로 가까이 다가가 다시 냄새를 맡아봅니다. 벌써 여름이 왔나.. 2010. 5. 11. 은밀한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이중심리 스밀라가 제일 좋아하는 은신처는 교자상 아래입니다. 거실에 손님접대 탁자 겸 어머니의 앉은뱅이책상으로 쓰고 있는데, 높이가 낮고 넓어서 스밀라가 즐겨 몸을 숨깁니다. 이번에도 교자상 밑으로 우다다 달려가서는, 순식간에 몸을 납작하게 하고 상 아래로 쏙 들어갑니다. 혹시 누가 잡으러 오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살짝 내밀어 기웃기웃합니다. 고개를 쭉 빼고 경계하는 모습이 어쩐지 익살스럽네요. 잡으러 오지 않을 것을 안 스밀라의 눈매가 차분해졌습니다. 쫓아오지 못하는 곳에 숨었으니 안심해야 할 텐데 어쩐지 너무 완벽하게 숨어버려 더 이상 숨바꼭질놀이를 할 수 없게 된 아이의 시무룩한 표정 같기도 합니다. 차분히 네 다리를 접고 식빵자세에 잠긴 스밀리입니다. 교자상 밑에서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 2010. 5. 10. 솜방망이 주먹으로 어퍼컷 날리는 고양이 고양이 주먹에 맞아보신 적 있나요? 동그란 찹쌀떡 같기도 하고 솜방망이 같기도 한 그 주먹에 맞아보면 기분이 참 묘합니다. 고양이가 적의를 담아 주먹질할 때는 발톱을 세우지만, 장난으로 주먹을 휘두를 때는 발톱을 얌전히 집어넣기 때문에, 맞더라도 당연히 아프진 않아요. 그냥 장난스런 스킨십 정도의 느낌이라서 더 정이 간답니다. 오늘도 세월아 내월아 하고 잠만 자는 스밀라의 턱을 살살 긁어주면서 잠을 깨워봅니다. 고양이가 오만상을 찌푸리고 '어~시원해' 하는 표정을 지을 때면 저도 따라 고양이 웃음을 짓게 되는데요. 너무 인상을 구기다보니 저 표정은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애매모호합니다. 근데 어쩐지 스밀라의 표정이 "이제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하며 슬쩍 짜증을 내려는 것만 같습니다. 급기야 어.. 2010. 5. 8. 젖 먹이는 엄마 길고양이, 뭉클한 모정 살아남으려면 길에서 사는 고양이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홀몸을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하물며 새끼 딸린 엄마 고양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엄마 고양이는 그저 젖만 물리는 게 아니라, 제 몸의 영양분을 있는 힘껏 짜내 새끼에게 먹인다. 새끼를 갖기 전에는 통통했던 고양이도, 얼마동안 새끼에게 젖을 먹이면 비쩍 말라버려 몰라보게 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젖 먹이는 엄마 길고양이를 가장 가까이서 보았던 건 예전에 일하던 잡지사 정원에서였는데, 엄마 고양이는 정원에 세운 조각상 좌대 밑의 빈 공간에 숨어서 새끼를 낳고 길렀다. 길고양이를 안쓰럽게 여긴 집 주인이 돼지고기며 계란을 빈 그릇에 담아주었는데도, 엄마 고양이는 젖 달라는 새끼들 성화에 몸이 바빠 먹을거리는 입조차 대지 못했다. 한두 마리도 .. 2010. 5. 7.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8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