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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취향 잡기놀이를 하다가 스밀라가 도망가는 곳은 가방 위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몇 달 전까지는 가방의 형상이었지만, 지금은 스밀라의 전용방석 노릇을 하고 있는 물건' 위로. 스밀라는 마치 바다에 둥실 뜬 뗏목처럼 작은 가방 위에 몸을 움츠려 붙이고, 볼록 올라온 가방 바닥 부분을 베게 삼아 머리를 기댄 채 이렇게 텔레파시를 던진다. "어이, 이젠 그만 하자고." 제가 먼저 놀자고 덤벼들어놓고서 이렇게 나오면 어리둥절하지만, 이것 역시 고양이의 변덕 중 하나이니. 앞다리를 반으로 접어 가슴 밑에 넣고 눈을 내리깐 스밀라의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약간 거만한 여왕 같다. 가방에 대한 고양이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스크래치의 압박으로부터 가방을 지키려면 죄다 숨겨두어야 한다. 오늘 새벽에도, 얼마 전에 새로 장.. 2008. 10. 9.
'뽀샤시 사진'이 좋아진 이유 나는 '뽀샤시 사진'을 싫어했다. 땀구멍도, 솜털도, 피부의 질감도 없이 그저 뽀얗게 흐려놓은 사진이라니,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뽀샤시 사진'은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결점을 흐리고 뭉갠 다음, 환영처럼 모호한 이미지만 남긴다. 아름다움의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그 사진에 대한 판단은 엇갈린다. 하얀 얼굴에 구슬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만 남은 얼굴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에겐 사진 속의 모습만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뽀샤시 사진'에서 지워진 것들(얼굴의 잡티나, 비뚤비뚤하게 자란 눈썹이나, 눈가의 잔주름 같은)이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 김빠진 맥주처럼 닝닝한 느낌밖엔 나지 않을 것이다. '뽀샤시 사진'을 거북하게 느꼈던 건, 결점은 없지만 인간미는 결.. 2008. 9. 20.
고양이의 도도한 매력 평일에는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신 어머니가 모처럼 스밀라와 놀아주시겠다기에,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스밀라가 평소에 좋아하던 플라스틱 끈을 휙휙 휘둘러봅니다. 근데 스밀라가 그다지 협조를 안해주네요. 표정이 영 떨떠름합니다. "이뭥미?"라는 얼굴.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기까지... 별로 놀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 삐친 걸까요? 플라스틱끈 끝에 스밀라가 좋아하는 빵끈까지 꿰었지만, 가차없이 고개를 휙 돌려버립니다. 예전에 깃털낚시 장난감으로 놀던 때의 똥꼬발랄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네요. 이젠 아예 앞발 집어넣고 식빵자세. 이건 놀 생각이 없다는 거지요. '어머니, 평소에 잘하시죠...' 뭐 그런 눈빛이랄까? 개는 반려인이 놀자고 하면 "저는 언제나 놀 준비가 되어있어요!" 하고 달려들지만.. 2008. 9. 14.
스밀라가 두발로 설 때 뭔가 보고 싶지만 얼굴이 닿지 않아 바둥대다가, 두 발로 일어선다. 고양이의 호기심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자세. 사랑스럽다. 직립 자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1년 전의 스밀라 사진. 털옷 아래 가려진 뒷발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2008. 9. 13.
낡은의자로 만든 고양이 놀이터 너덜너덜 낡았지만 못 버리는 물건이 있어요. 고양이가 좋아하기 때문이죠. 낡은 의자로 비싼 캣타워 못지않은 고양이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스밀라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스밀라의 경우 스크래처, 전망대, 동굴 등의 용도로 쓰고 있어요. 이것이 문제의 낡은 식탁의자 두 개. 아마 고양이와 함께 사는 분이라면 저런 광경 많이 보셨을 듯... 뭐 이것도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구요, 스밀라가 몇 달간 실컷 뜯어서 그런 거죠. 원래 새 식탁 세트를 주문하면서 버리려 했는데, 거실로 내놓은 의자를 보더니 스밀라가 폴짝 올라가 발톱으로 뜯기 시작하는 거에요. 어차피 버릴 거니까 "그래, 실컷 갖고 놀아라" 하면서 놓아두었어요. 분리수거 날까진 집안에 두어야 하니까요. 그랬더니 그 꼬질꼬질한 의자가 그렇게도 .. 2008. 9. 10.
'나중에'보다 '지금' 고양이와 함께 살기 전엔 잘 몰랐다. 고양이에게도 코딱지가 있다는 걸. 스밀라를 안고 둥개둥개 어르면서 얼굴을 들여다보면, 가끔 콧구멍에 코딱지가 붙어있는 게 보인다. 고양이세수를 해도 거기까진 잘 닦이지 않아서 그럴까. 투명했던 콧물은 어떻게 까만색으로 변하는 걸까. 흰 털옷을 입은 고양이라 그런지, 코딱지가 더 도드라진다. 하지만 더럽다는 느낌보다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한 아기 같아서. 살아있는 생명이니까, 가짜가 아니니까, 코딱지도 생기고 눈곱도 끼는 거다. 스밀라를 데려오기 전에, 고양이는 키우고 싶은데 상황은 안 되니 장난감 박람회에서 본 고양이 로봇이라도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격은 생각보다 비쌌지만 도저히 못 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양이 로봇이 진짜 고양.. 2008.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