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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미국, 그 혼돈과 낭만의 시대-<원더풀 아메리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8년부터 대공황 직전인 1929년까지, 1920년대 미국 사회의 단면을 다각도에서 조망한 (앨피)가 출간됐다. 1931년 출간되어 미국사의 고전으로 평가되는 이 책을 흥미롭게 하는 건, ‘하퍼스 매거진’ 편집자 출신인 프레드릭 루이스 알렌의 글맛이다. 역사서로 분류하기에 아까울 만큼 이 책은 눈에 착착 감긴다. 특히 1919년 스미스 부부의 하루 일과로 당시 풍경을 재현한 책의 첫머리는, 오래된 흑백TV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책장을 슬쩍 타넘어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의 미국 속으로 들어가 보자. 윌슨 대통령의 이상주의가 몰락한 미국에서는, 히스테리에 가까운 애국주의의 출현으로 ‘빨갱이(볼셰비키) 사냥’이 활개를 쳤다. 백인 남성 개신교도들의.. 2006. 5. 13.
'치유와 화해' 말하는 하루키의 상상력-<도쿄기담집>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이후 5년 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이 출간됐다. 기존 단편 소설 네 편과 신작 ‘시나가와 원숭이’를 묶어 펴낸 책이다. 책 제목만 본다면, 어딘지 모르게 음산하고 기괴한, 그러면서도 하루키 특유의 유쾌한 상상력이 버무려진 이야기일거라는 기대가 생긴다. 특히 하루키는 장편 소설 못지않게 단편 소설과 에세이 등 짧은 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온 만큼, 이번 단편집에 쏟아진 관심도 그만큼 컸다. 한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치와 다르다고 느낄 사람도 적지 않을법하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환상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하루키의 화법은 여전하지만, 그의 전작을 읽을 때마다 감탄했던 상상력은 절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깊고 진한 맛이 담긴 갈비탕을 기대.. 2006. 4. 17.
25년간 '청학동'을 찍은 남자-류은규의 '청학동 이야기'전 [미디어다음/2006. 4. 13]댕기머리 청년, 갓을 쓴 백발노인…현대문명 속에서 전통을 고수하는 청학동 사람들의 모습을 25년간 사진으로 기록해온 류은규(45)의 ‘청학동 이야기’전이 서울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린다. 1960년대 초부터 경상도 하동 인근 지리산 자락에서 마을공동체를 일궈온 청학동 사람들. 이들은 흰 한복을 입고, 총각 시절에는 댕기머리를 유지하며, 결혼 후에는 갓을 썼다. 남자들은 서당에서만 공부했기에 군대를 가지 않았다. 그들만의 신앙인 ‘유불선합일갱정유도’를 엄격히 믿으며 문명을 거부하고 자급자족해온 청학동은, 세속의 눈으로 보면 ‘신비의 마을’일수밖에 없었다. 1982년 당시 학생이었던 류은규 역시, 처음에는 사진학도의 호기심으로 청학동을 찾아 나섰다. 요즘이야 서울에서 5시간이면.. 2006. 4. 13.
다시, 정든 유곽에서 신고서점 2층에서 내려다 본 1층 책꽂이. 원래 동굴을 연상시키는 다락방 같은 구조였지만, 나선형 계단을 설치하면서 널찍한 2층 헌책방이 됐다. 집에서 전철로 20분 거리, 그나마 가까운 헌책방이 여기다. 한참 마음이 헛헛하던 무렵 중독된 것처럼 헌책방을 찾곤 했다. 인터넷서점 헌책방이 활성화되면서 예전처럼 자주 가진 않지만, 여전히 내게 헌책방은 단순히 헌책을 파는 곳 이상의 '무엇'이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내게 헌책방이 의미있었던 건 절판된 책을 구할 수 있어서라거나 책을 싸게 살 수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다. 20대 중반에 만나 학창 시절을 공유했고, 졸업한 후에도 다들 헌책방 언저리에 머물던 '책 중독자들'이었는데, 이젠 그들을 만날 기회도 거의 없다. 드물게 열리는 헌책.. 2006. 4. 10.
현미로 그린 가수 현미-'재료미학-만찬'전 [미디어다음/2006. 4. 1] 현미로 그린 가수 '현미', 지우개똥으로 그린 꽃 그림, 포스트잇으로 그린 마릴린 먼로 등 기상천외한 재료로 작업하는 화가들의 전시가 열린다. 충무갤러리에서 4월 20일까지 열리는 '재료미학-만찬'전을 찾아가본다. 충무갤러리 개관1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물감 대신 재료의 물성에 주목하며 작업해온 작가들의 이색 작품들이 소개된다. 출품작 중 단연 눈에 띄는 작품은 이동재의 곡물 초상화. 그는 백미, 현미, 콩, 녹두, 깨 등 다양한 곡물을 컴퓨터그래픽 픽셀처럼 치환해 그림을 그려냈다. 단순히 곡물로 픽셀을 대신하기만 했다면 별 의미가 없지만, 이동재의 곡물 그림은 한국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유희가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현미로 가수 '현미.. 2006. 4. 1.
무의식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상징 언어-<인간과 상징> 정신분석학이 학문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1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1895년 출간된 요젭 브로이어·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공저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를 초석삼아 시작된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 ‘정신분석입문’(1917)을 계기로 획기적인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꿈을 욕망의 억압으로 도식화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이다. 프로이트가 콤플렉스의 역기능에 초점을 맞췄다면, 융은 전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집단 무의식의 상징성과 창조성에 주목하고, 그 속에 등장하는 원형의 이미지를 발견해 인간 내면의 대극적 요소를 통합하는데 더 큰 관심을 쏟았다. ‘인간과 상징’은 이와 같은 융 학파의 이론.. 2006.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