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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상징 언어-<인간과 상징> 정신분석학이 학문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1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1895년 출간된 요젭 브로이어·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공저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를 초석삼아 시작된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 ‘정신분석입문’(1917)을 계기로 획기적인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꿈을 욕망의 억압으로 도식화한 프로이트의 이론이 한계를 드러내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 칼 구스타프 융의 분석심리학이다. 프로이트가 콤플렉스의 역기능에 초점을 맞췄다면, 융은 전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집단 무의식의 상징성과 창조성에 주목하고, 그 속에 등장하는 원형의 이미지를 발견해 인간 내면의 대극적 요소를 통합하는데 더 큰 관심을 쏟았다. ‘인간과 상징’은 이와 같은 융 학파의 이론.. 2006. 3. 27.
토착 철학 꿈꾼 ‘작은 거인’ 유영모-<다석 강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루(오늘)만이 영원히 있는 것이다. 오늘의 ‘오’는 감탄사이고 ‘늘’은 언제나 항상이란 뜻이다.” 어떻게 듣자면 말장난 같기도 한데, 풀어헤친 단어 속에 진실이 있다. 사상가이자 교육자였던 다석(多夕) 유영모(1890~1981)는 이런 식의 우리말풀이 강의를 즐겼다. 키가 채 160cm이 안 되는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이었으나, 서울 종로 YMCA에서 연경반(硏經班) 강의를 할 때는 마치 육척 거구이라도 된 듯한 기력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씨알운동으로 유명한 함석헌도, 평생 농촌운동에 헌신한 유달영도 그를 스승으로 받들어 모셨다. 그는 하루에 한 끼, 저녁만 식사했는데 ‘세 끼를 합쳐 저녁을 먹는다’는 뜻에서 호를 다석이라 정하고, 학자이면서도 “사.. 2006. 3. 27.
[주제가 있는 책꽂이] 감칠맛 나는 우리말의 보물창고 우리말의 묘미 중 하나는 약간만 상황이 달라져도 전혀 다른 어휘로 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술이라는 단어 하나도, 어떻게 마시는지에 따라 그 이름이 달라진다.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해 마신 술은 배움술, 멋으로 마시는 술은 멋술이 아니라 맛술, 맛도 모르고 마시는 술은 풋술이라 한다. 한술 더 떠서, 멋도 맛도 모르고 함부로 들이켜는 술은 벌술, 보통 때는 안 먹다가도 입만 대면 한없이 먹는 술은 소나기술,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은 강술이라 한다. 모꼬지다, 신입생 환영회다 술 마실 일이 늘어난 요즘, 술병으로 고생하지 않으려면 벌술, 소나기술, 강술 따위는 아예 시작도 말아야겠다. 앞서 소개한 술 이름들은 모두 장승욱의 (하늘연못 펴냄)에 수록된 우리말이다. 이 책에는 우리 토박이말 4,79.. 2006. 3. 20.
[책의 재발견] 마음 깊은 곳을 찌르는 푼크툼의 발견 사진에 입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추천하는 책이 바바라 런던·존 업턴의 이다. 카메라의 구조부터 촬영 사례까지 꼼꼼하게 짚은 이 책은 사진의 길잡이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기술적인 면에 치중한 개론서를 넘어, 사진의 본질을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각을 접하고 싶다면 를 권한다. 저작권 문제로 1999년 말 절판된 이 책은 현재 시중 서점에서 구할 수 없지만, 동문선에서 롤랑 바르트 전집의 저작권 계약을 이미 체결해둔 상태여서 조만간 재출간될 예정이다. 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1915~1980)의 마지막 저작이다. 이 책은 크게 보아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사진의 본질을 치밀하게 탐구하는, 비평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사진론’이면서, 한편으로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며 삶과 죽음의.. 2006. 3. 19.
길에서 만난 세상 “앞만 보고 가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은 앞만 보고 가야 무궁한 발전이 있고, 무너지지 않을 탑을 쌓을 수 있고, 국가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서,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승용차라도 탄 듯 뒤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했다. 주변과 이웃들을 조금만 살펴가며 전진했더라도 이웃들이 눈물을 흘리는 데 그쳤을 텐데, 녀석은 이웃들이 피눈물을 쏟아내도록 안하무인으로 앞만 보고 내달렸다. 녀석을 일컬어 사람들은 자본주의라고 했다.” 박영희 시인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우리교육 펴냄)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이들을 소개한 책이다. 월간(국가인권위원회 펴냄)에서 2004년 2월~2005년 7월까지 연재된 동명의 기사를 묶어 펴낸 이 책은, 때로는 울분에 찬, 때로는 서글픈 목소리로 성.. 2006. 3. 14.
기이하고 감동적인 인간박물관-'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대학내일/ 2006. 3. 6] 뛰어난 성악가이자 음악교사였던 P선생. 사고력도 시력도 멀쩡하지만, 언제부턴가 그의 눈에 모든 사물이 원래 모습과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해 머리에 뒤집어쓰려 낑낑대고, 벽에 걸린 추시계를 사람으로 오인해 악수를 건네는 일마저 생겼으니 어쩌면 좋을까? 괴짜 같은 유머감각의 소유자로만 보였던 P선생은, 사실 뇌종양 후유증 때문에 형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 ‘시각인식 불능증’ 환자였다. 뉴욕대 의대 신경학과 부교수인 올리버 색스의 (이마고 펴냄)는, P선생을 비롯해 독특한 유형의 신경장애 환자 24명을 소개한 임상사례집이다. 그러나 의사가 썼다 해서 딱딱한 논문 같은 글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경쾌하고 자유분방한 표지 그림과 삽화는, 의학전문서 아닌 .. 2006. 3.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