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방석' 즐기는 고양이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한 말이지요. 스밀라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저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요. 파주에서 서울까지 좌석버스를 타고 와서, 다시 전철을 2번 갈아타고 집에 오면 칼퇴근을 해도 8시가 됩니다. 어머니의 증언으로는, 스밀라가 7시 반만 되면 현관 주위를 어슬렁거리거나 현관문 옆에 도사리고 앉아서 저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이때쯤 올 텐데 하고 제가 올 시간을 기억한다는 거죠.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제가 씻고 책상 앞에 앉으면 "응!" 하고 기합을 넣으면서 단번에 뛰어올라 저렇게 책상 위에 앉습니다. 등을 동그랗게 말아가지고 최대한 몸을 작게 만들어서 앉은 고양이를 보면 오리 같기도 하고, 백자 같기도 해요... 2009. 7. 15. 고양이가 여름을 느낄 때 잠깐 나갔다 올 일이 있어 외출 준비를 하는데, 스밀라가 보냉상자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앉은 것이 문틈 너머로 보인다. 며칠 전 김치배달을 시키고 나서 미처 치우지 않았던 상자인데, 저 위에 앉아있으니 빙산 위의 아기물개 같다. 드디어 고양이들이 바람 잘 드는 곳을 찾아다닐 때가 된 것이다. 완연한 여름이다. 2009. 6. 29. 작은 세계 투명한 물로 가득 찬 스밀라의 눈동자에 방이 비친다. 회색과 흰색이 섞인 스밀라의 털옷과, 스밀라가 깔고 앉은 검은 배낭과, 스밀라를 찍는 나와, 등 뒤의 책꽂이까지. 고양이가 보는 세계를 내가 다시 들여볼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롭다. 그건 스밀라의 눈이 볼록거울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눈에 비친 조그만 세계의 무게를 떠올려보고, 그 세계를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지켜야 할 소중한 대상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스스로를 놓아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내는 게 아닐까 싶다. 2009. 6. 25. 감출 수 없는 것 고양이의 동공이 커질 때는 대개 두 가지 경우다. 눈앞이 온통 어둠뿐일 때와, 관심 가는 뭔가를 발견했을 때. 이 두 가지는 고양이에게 본능적인 반응이어서 감출 수가 없다. 사람들은 고양이가 의뭉스럽다 말하지만, 동물 중에 가장 명확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건 고양이가 아닌가 싶다. 어차피 어두우니 눈 떠도 소용없다고 포기하지 않기, 어둠 속에서 눈 감지 않기.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마음에 담아두기, 가지지 못해도 눈동자 속의 우물에 담아오기. 고양이가 내게 가르쳐주는 것. 2009. 5. 30. 고양이가 생각하는 책의 또다른 용도 오래간만에 스밀라의 근황을 전합니다. 잘 자고, 잘 놀고, 여전히 새벽 5시에 사람을 깨우네요T-T 발밑에는 어머니의 여권지갑을 깔개 대신 깔고, 저렇게 동그랗게 해 가지고 누워있습니다. 종종 사람들도 그렇게 합니다만, 역시 고양이도 책을 베개로 쓸 줄 아는군요^^ 눈이 스르르 감기는가 싶더니... 꾸벅꾸벅 졸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머리를 기댑니다. "난 머리로 책 내용을 흡수하고 있을 뿐이고~" 하지만 실제로 잘 때는, 베개 없이도 잘 잠든답니다. 살짝 앙다문 송곳니가 매력포인트. 2009. 5. 21. 좌절금지 자기 삶이 힘들면, 남의 고통에 감정이입할 여력도 없어지지요. 세상에는 웃으면서 남의 가슴에 칼을 꽂는 사람도 있고,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빈말로라도 힘을 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게 좋고 나쁜 것들을 더하고 빼고 나면 고통스러울 것도 기쁠 것도 없는 담담한 삶이 남지요. 가끔 인간에 대해 실망하지만, 인간이 싫다고 말할 수 없는 건 나 또한 누군가에겐 힘이 되었겠지만 누군가에겐 실망도 주었을 테고, 어떤 대상의 고통에는 쉽게 몰입되면서, 어떤 대상에겐 무심한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인간이라고, 아직까지는 믿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좌절금지. 2009. 4. 28.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