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예감 스밀라는 거실에서 잠을 자고, 새벽 5시쯤 일어나 베란다방 화장실에 갔다가, 거실로 돌아와 밥을 먹는다. 오늘 새벽에도 발톱으로 방문을 긁으며 앵알거리기에, 문을 열어주고 다시 선잠이 들었다. 살짝 열어놓으면 알아서 드나들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잠든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거실에 있던 스밀라가 방문 앞에서 계속 울며 나를 불렀다. '제발로 열면 될 걸 왜 오늘따라 호들갑인가'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문을 열어줬더니, 방에 들어왔다가 다시 나갔다가 안절부절못하면서 울어댄다. 혹시 사료가 다 떨어졌나 싶어서 거실로 나가 봤다. 날이 궂은 건지 거실까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다. 그런데 안개 속에서 매캐한 냄새가 났다. 안개가 아니라 연기였다. 부엌에 둔 토스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까맣게 .. 2008. 4. 11. 이와고 미츠아키의 길고양이 사진집 사야 할 잡지 과월호가 있어 도쿄 진보초 헌책방 거리를 찾아갔다가, 마침 산세이도 서점이 눈에 띄어 들렀었다. 헌책방은 아니고 새책방이지만, 지금은 망해버린 종로서점 같은 고색창연한 인상이다. 건물 벽에 'SINCE 1881'이라고 적힌 동그란 로고가 붙어 있어, 나름의 연륜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이와고 미츠아키(岩合光昭)의 길고양이 사진집들을 보고 지름신 강림이 두려워서 딱 한 권만 사기로 결심했는데, 그냥 그때 확 다 사 버리는 게 나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쉽다. 그날 심사숙고 끝에 골랐던 책은 이것. 일본 뿐 아니라 세계의 길고양이들을 담았는데, 멋지고 익살스러운 사진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표지가 사랑스럽다. 콧방울 풍선을 매단 고양이라니! 판권을 보니 2005년 5월 출간된 책인.. 2008. 4. 7. 다르게 걷기 야나카 긴자가 내려다보이는 저녁놀 계단 맨 꼭대기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손목에 끼우고 걷는 동네 사람, 목에 카메라를 맨 뜨내기 관광객들, 무심히 종종걸음을 걷는 길고양이가 각자 제 갈 길을 바삐 간다. 오가던 사람들 중에, 엄마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갓길로 올라선다. 계단은 경사가 제법 있는 편이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살짝 어질어질한데도, 심심한 계단보다 비탈진 갓길을 아슬아슬하게 걷는 게 더 재미있게 느껴진 모양이다. 왜 어렸을 때는 길을 벗어나는 게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걸까? 왜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고 싶어질까? 그렇게 가다 보면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그것도 한때뿐이지. 언젠가는 억지로 시켜도 어려운.. 2008. 4. 6. 버리지 못하는 이유 5년 전쯤 샀던 디지털카메라를 요즘 다시 꺼내 쓴다. 한참 웹진에 전시 리뷰를 쓸 때 이걸로 쭉 전시 사진을 찍었고, 초창기 길고양이 사진을 찍을 때도 이 카메라와 함께 했으니 본전은 뽑고도 남은 셈이다. 내수로 구입했는데 다행히 고장난 적이 한번도 없다. 암부 노이즈가 많고 고해상도 파일로 저장할 때 시간이 무지 걸려서, 새 카메라를 산 뒤로는 찬밥 신세가 됐지만, 접사 사진 찍는 용도로는 아직 쓸 만하다. 스밀라의 눈동자에 살짝 내려앉은 고양이 털까지 보일 정도. 오래된 카메라처럼, 낡고 불편해도 쉽게 처분하지 못하는 물건들이 있다. 쓰면서 쌓인 추억을 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도 쓸만한 구석이 조금은 있으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늘어간다. 2008. 4. 6. 스밀라의 기록법 15년 묵은 아파트에 살다 보니,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구석구석 뜯어보면 성한 구석이 없다. 처음엔 황금빛이었다가 이젠 구릿빛으로 변한 손잡이는 헛돌기만 할 뿐 제대로 열리지 않고, 부엌 싱크대 서랍 레일이 망가져 툭 기울거나, 거실 천장의 형광등 커버가 느닷없이 추락하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고양이에겐 이렇게 낡은 집도 그저 새로워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잠으로 보내는 녀석이지만, 깨어 있을 때면 집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소일하느라 여념이 없다. 책꽂이 위로 폴짝 뛰어올라 꼭대기에 쌓인 먼지를 털고, 방문을 열겠다고 앞발로 문짝을 긁어 생채기를 남기면서. 가끔 스밀라가 문 앞에서 벅벅 긁는 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나갈 때면,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문을 열고 .. 2008. 3. 30. 물구나무 스밀라 스밀라의 물구나무 서기(처럼 보이는 발라당) 사진들. 다리가 후들거리면 꼬리로 균형을 잡아보아요. 휙휙~ 이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고요. 후훗~ 이렇게 말하는 것 같지만, 실은 힘들어서 헥헥. 그래도 귀여워요. 2008. 3. 28. 이전 1 ··· 188 189 190 191 192 193 194 ··· 30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