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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문 열어달라 시위하는 스밀라 아침이 되면 스밀라가 "앵" 하고 울면서 저를 불러서 베란다 유리문으로 데리고 갑니다. 베란다 산책을 나가겠다는 뜻이죠. 데리고 갔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저렇게 한번 힐끗 올려다보며 얼른 문을 열라고 신호를 줍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애앵~"하고 꾸지람하는 어조로 길게 울며 창문 한번 보고, 다시 저를 올려다보지요. 하지만 약을 아직 먹이지 못해서 베란다문은 나중에 열어주기로 합니다. 스밀라는 베란다에 쌓아놓은 종이상자 위로 단번에 달음박질해서 그 위에서 식빵 굽고 있거나 낮잠자기를 좋아하는데, 일단 그 위로 도망가버리면 데려오기가 여간 함들지 않거든요. 약 먹는 건 어떻게 귀신같이 알고, 그 전에 달아나려고 합니다.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자, 스밀라의 얼굴에도 불만이 서립니.. 2013. 4. 21.
레이저 눈총 쏘는 한밤의 길고양이 외대에 들렀다가 구석진 곳에 숨어있는 길고양이 가족을 만났다. 완전히 아깽이는 아니지만, 청소년 고양이 정도. 그전에도 고양이가 머무는 자리 근처에 밥그릇용 일회용기가 놓여 있던 걸로 보아, 아마 밥을 챙겨주는 학생이 있는 모양이다. 대학교 근처에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들의 흔적이 종종 보인다. 고양이들이 여유롭게 앉아있는 건, 나와 녀석들 사이가 창살로 가로막혀 있기 때문. 그러니까 고양이는 내가 저희들 근처로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을 알고 여유를 부리는 게다. 고양이가 여유를 부린다면 내 입장에서도 아쉬울 것은 없다. 이렇게 창살을 사이에 두고 고양이 일가족과 내가 서로 눈싸움을 하는 형국이 됐다. 맨 앞에 나선 고등어무늬 고양이가 가장 대담한 듯. 나를 보고서도 피하지 않고 나무 턱에 몸을 기.. 2013. 4. 20.
길고양이 네로를 지키는 경복이, 후일담 전에 다니던 회사 뒷골목에 살던 검둥개 경복이. 처음 만났을 때 털이 덥수룩했던 경복이는 그 후 한 차례 미용을 해서 말쑥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같은 골목에 사는 다른 개인가 했는데, 목에 맨 보라색 리본을 보고서야 경복이와 같은 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덥수룩한 털에 가려져 있던 동그란 눈도 또렷하게 드러나 훨씬 더 어려보인다. 사람도 머리 모양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는데, 동물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하지만 경복이의 평소 모습은 이런 모습. 경복이가 지켜주곤 했던 삼색 길고양이 네로도 함께 했다. 역시나 출근길 빠듯한 시간에 휴대폰으로 찍은 거라 남아있는 사진이 몇 장 없지만, 그래도 둘의 다정한 모습을 남겨두고 싶었다. 네로는 그새 새끼를 낳아 얼굴이 홀쭉해졌고, 경복이는 목에 매달았.. 2013. 4. 19.
삐친 고양이, 물개놀이로 달래주기 아침에 일어나보면 문간을 지키고 있는 스밀라와 얼굴이 마주칩니다. 잠든 제 얼굴을 쳐다보면서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겠지요. 보통 자정쯤 되면 머리맡이나 의자 위에서 잠자다가 새벽 4시쯤 거실로 나가 놀고 다시 들어오는데, 그 사이 나갔다 온 것을 제가 모르는 걸로 생각하는지, 어젯밤부터 내내 거기 있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네요. "네가 일어날 때까지 나는 여기서 지루하게 기다렸다고" 하는 표정으로 샐쭉하게 앉아있습니다. 잠에 취해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고 삐친 스밀라의 마음을 달래주려면 저도 물개가 되어야지요. 스밀라가 문앞에 저렇게 배를 납작하게 깔고 앉아있을 때면, 일명 '물개놀이'를 해 주는데 사람도 고양이처럼 땅바닥에 배를 깔고 눕는 것입니다. 눈높이를 맞추면서 이야기도 하고 놀 수 있어.. 2013. 4. 18.
간식으로 마른 풀 씹는 길고양이 골목 산책 중에 만난 길고양이가 따뜻한 볕을 즐기며 화분에 앉아 있습니다. 까칠한 마른 풀 옆에 자리를 잡더니 킁킁 냄새를 맡아봅니다. 마른 풀에서는 아직 겨울 냄새가 날 텐데, 고양이는 무슨 냄새를 맡을지 궁금해집니다. 냄새를 맡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혀를 낼름 내밀어 맛을 봅니다. 남아 있는 풀의 모양새로 보아 고양이들이 즐겨먹는 고양이풀 같지는 않은데, 고양이에게는 평소 맛보던 맛이 아니어서 더 호기심이 생긴 모양입니다. 저때만 해도 그냥 마른풀 줄기에 턱을 몇 번 긁고 말겠거니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는 길고양이. 급기야 "앙!"하고 입을 크게 벌려 마른 풀줄기를 아작아작 씹어버립니다. 꽤 흐뭇한 얼굴로 오랫동안 풀을 씹고 있는 걸 보니 "간식은 이렇게 바삭바삭한 것이 제맛이지.. 2013. 4. 17.
동일본 대지진, 버려진 동물들은 어떻게 되었나-《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책공장더불어)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동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있느냐는 말을 가끔 듣습니다. 평범한 일상생활 중에도 그런 말을 듣기 십상인데, 지진이나 홍수, 태풍처럼 대규모 재난을 겪은 땅에서는 더하겠지요. 후쿠시마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일어난 원전사고로 방사능이 유출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입니다. 사람이 버리고 간 그곳, 이미 잊혀가는 그 땅에도 동물들은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책공장더불어)은 재난이 덮친 후쿠시마를 떠나지 못하고, 혹은 스스로의 의지로 떠나지 않고 집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동물들, 손쓰지 못해 죽어가는 동물들,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넌 동물들을 기억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집입니다. 원전사고 반경 20킬로미터 이내, 방.. 2013.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