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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블럭으로 그린 삐딱한 한국화-황인기 '디지털山水'전 Mar. 29. 2002 | 갤러리인에서 4월 5일까지 열리는 황인기(49, 성균관대 교수)의 6번째 개인전 ‘디지털 山水’전에는 낯익은 그림들이 등장한다.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전시된 작품 속 이미지에는 원본의 윤곽이 남아있지만, 5∼6미터는 족히 됨직한 전시장 벽을 가득 메울 만큼 거대한 규모는 원본이 지닌 정서를 압도하며 황인기의 작품에 새로운 맥락을 부여한다. 단순하지만 강한 1비트 이미지 작가가 그려낸 사본 이미지가 원본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농묵, 중묵, 담묵이 자연스럽게 뒤섞인 원본의 명암처리를 1비트 이미지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흐릿한 부분은 날아가버리고 짙은 부분은 더욱 강조된 이미지는 입체감을 잃은 대신 극적인 명암대비로 인해 더욱 강렬.. 2002. 3. 29.
놀이치료 하듯 만들어낸 소인국 세계 Mar. 22. 2002 | 외부 세계는 너무나 크고 위압적으로 느껴지는데, 자신에게 주어진 왜소한 몸과 정신으로는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두렵고 막막한 순간이 있다. 그런데 당사자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그 세계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막 걸음마를 내딛는 어린아이의 발 앞에 놓인 계단 한 단이 아이에게는 엄청난 도전이지만, 어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럴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인데, 스스로를 확장시켜 바깥세계로 한 걸음을 내딛던가, 아니면 소인국에 간 걸리버처럼 외부 세계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장 과정에서 경험하는 반면, 후자의 경우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상징적인 퇴행의 힘을 빌리면 가능하다. 3월 9일부.. 2002. 3. 22.
섬광처럼 빛나는 지적 유희의 놀이터-‘Blink’전 Mar. 22. 2002 | 3월 16일부터 4월 14일까지 아트선재센터 1∼3층에서는 젊은 작가 기획전 ‘Blink’전을 개최한다. 김소라, 양혜규, 정혜승, 남지 등 4명의 작가는 모두 국제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여성작가이면서, 개념적 성향의 미술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Blink’라는 전시명에서 연상할 수 있듯, 이들의 작품은 섬광처럼 반짝이는 발상이 돋보인다. 미술관에 들어선 기발하고 난해한 놀이터 네 명의 작가가 작품 속으로 관람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은 재기발랄하지만, 이들이 벌여놓은 현란한 지적 유희의 놀이터에 뛰어드는 일은 만만치 않다. 작가의 설명 없이 제작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적 전환 때문이다. 컴퓨터문화를 기반으로 익명의 공동체문화를 실험하는 정혜승(29)의 .. 2002. 3. 22.
잃어버린 반쪽, 한국 여성미술사를 찾아서 Mar. 15. 2002 | ‘주체로서의 남성과 대상으로서의 여성’. 서구 시각예술의 역사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위계질서다. 이 같은 관계가 위험한 것은, 그림 속에 묘사된 여성상이 단순히 미적 감상의 대상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여성의 수동적 정체성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서구미술의 전통을 이식한 한국 근현대미술사 속에서 여성성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을까?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3월 6일∼6월 29일까지 개최되는 ‘또다른 미술사-여성성의 재현’전은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시명이 상징하듯 이번 전시는 여성작가가 일궈낸 절반의 미술사를 발굴해 되살리려는 의도에서 기획됐다. 상실된 절반의 미술사 되살리려는 시도 한국 근현대미술작가 63명의 작품 71점을 선보인 이번 전시는 1부 ‘여성의 이.. 2002. 3. 15.
섬세하고 매혹적인 네크로필리아의 꿈 Mar. 15. 2002 | 가늘고 검은 선이 마치 실핏줄처럼 스멀스멀, 종이 위를 치밀하게 뻗어나간다. 그물 짜듯 이어지는 선의 흐름 끝에서 윤곽을 드러낸 형체는 짐승 같기도, 사람 같기도 한데 피부는 온데간데없고, 적나라하게 드러난 근육다발은 툭툭 끊겨 나풀거린다. 두 눈알은 밖으로 튀어나와 더듬이처럼 늘어지고, 살점 하나 붙어있지 않은 하얀 뼈마디도 눈에 밟힌다. 해골의 형상을 한 뮤즈와 공중그네를 타듯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이것은 3월 19일까지 대안공간 풀에서 열리는 김경태 개인전의 광경이다. 선을 긋는 손이 두려움에 떨릴 법도 하건만, 만약 작가의 손이 떨린다면 그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라 희열을 주체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얼핏 보기에도 김경태가 자신의 피조물에 갖는 애착은 네크로필리아를.. 2002. 3. 15.
파멸, 자성, 희망의 3색 공간- ‘금단의 열매’전 Mar. 08. 2002 | 현재 출간된 책 중에서 예술가들이 가장 빈번하게 작품의 모티브로 삼아온 책은 무엇일까? 아마도 성경이 아닐까.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 보더라도, 인간의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파멸을 경고한 성경의 메시지는 문명의 이기에 잠식돼 가는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2월 21일부터 4월 7일까지 성곡미술관 본관에서 열리는 제3회 성곡미술대상 기획공모수상작 ‘금단의 열매’전 역시 성경의 창세기를 인용했지만, 종교적 색채보다 자기성찰과 희망이 강조됐다. 김은정, 이윰이 공동기획한 이번 전시는 8명의 작가가 ‘Where are you?’, ‘지식의 나무’, ‘생명의 나무’등 3개 팀으로 나뉘어 전시장을 독립된 세 개의 공간으로 재구성했다. 파멸 위기에 놓인 인간의 자아성찰 여행 따.. 2002.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