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와 함께한 5년 4개월, 시간이 담긴 풍경 이사를 이틀 앞두고 거실에 미리 싸둔 짐을 내놓았더니 집안 분위기도 어수선해졌습니다. 스밀라도 편히 쉴 곳이 마땅치 않았는지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제 방 문앞에 자리를 잡습니다. 아기나 반려동물이 사는 집에는 갑자기 문 닫히지 말라고 문틈에 끼워두는 도어 스토퍼가 있는데, 스밀라가 앉아있으니 꼭 고양이 도어 스토퍼처럼 보입니다. 여기 앉으면 거실도 볼 수 있고, 고개를 돌리면 제가 앉아있는 책상 쪽도 볼 수 있어서 스밀라가 좋아하는 자리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밀라가 이 자리에 앉아있다가 저를 향해 애앵 하고 울곤 했었지요. 이 집에 이사 온 지도 벌써 8년, 그 8년 중에서 5년 4개월을 스밀라와 함께했습니다. 스밀라가 매번 발로 문짝을 긁어 당기면서 문을 여는 바람에 문이 긁혀 고민했던 게 엊.. 2011. 11. 5. 한쪽 스타킹 잃어버린 길고양이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어쩌면 고양이마다 저렇게 무늬가 다르고 성격이 다를까 새삼 신기해지는 때가 있습니다. 부산 용궁사에 들렀다가 나오는 길에 만난 검은 턱시도 고양이도 그랬습니다. v자형 앞가슴털이 마치 턱시도 사이로 비치는 흰 와이셔츠 같아서 흔히 턱시도로 불리는 길고양이인데, 이 녀석은 독특하게도 한쪽 다리 스타킹을 잃어버린 것처럼 흰 다리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턱시도 길고양이라면 짝짝이 바지를 입은 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바지 통이 좁아서 스타킹이라는 느낌이 더 걸맞습니다. 방향을 바꿔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며 반대쪽 다리를 슬며시 보여주는 턱시도 모습입니다. 무심한 듯 걷고 있지만 이쪽을 신경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달아나기 전 한 번 더 이쪽의 동향을 살피는 길고양이의 마음... 2011. 11. 4. 길고양이 점박이, 빛나는 후광 꾸벅꾸벅 졸고 있던 길고양이 점박이. 나른한 가을저녁 햇살은 고양이의 눈꺼풀을 무겁게 만듭니다. 앞으로 돌아가보니, 실은 졸지 않았다는 듯 한쪽 손을 불끈 쥐어보입니다. 명상을 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항변하는 듯합니다. 당당한 점박이의 얼굴 뒤로 후광이 비칩니다. 지붕 너머 저편으로 지는 햇살은 점박이의 얼굴에 자신감을 더해주는 또 다른 특수효과가 됩니다. 그 당당함이, 작은 고양이의 키도 훌쩍 커보이게 만듭니다. 길고양이와 나와 단둘이서 가만히 눈맞춤하는 시간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평안한 시간. 지루한 것은 견디지 못하는 길고양이 쪽에서 먼저 눈맞춤을 풀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겠지만, 눈싸움 아닌 고요한 눈맞춤의 시간은 서로가 서로의 마음길로 가 닿는 시간으로 남습니다. 2011. 11. 2. 사람과 눈맞추려 발돋움하는 보호소 고양이 스톡홀름 '고양이의 집'에 살고 있는 임시보호 고양이들. 바깥이 보이는 대형 케이지에 살고 있지만 사람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방문객이 드나들 때마다 고개를 빼고 반기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려 몸을 곧추세웁니다. 좁다란 의자 팔걸이에 두 발을 조심스레 얹고, 발돋움을 해봅니다. 아슬아슬한 몸짓에 조바심이 묻어납니다. 누군가와 눈을 맞추어 마음이 통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새로운 집으로 입양갈 수 있다는 것을 노랑둥이도 본능적으로 아는 듯합니다. 산책 시간이 되어 케이지 밖에 나와 있는 친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노랑둥이 고양이. 자기도 언젠가는 저 밖으로 나가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친구가 부럽습니다. 하나는 안에서, 하나는 밖에서. 그렇게 누군가를.. 2011. 10. 31. 눈 가리고 아웅, 비닐봉지에 숨은 스밀라 스밀라와 잡기 놀이를 하다가, 달아날 곳이 궁색해진 스밀라가 비닐봉지 안으로 쏙 뛰어듭니다. 머리만 가려지면 자기 몸이 다 가려질 거라고 생각했는지, 엉덩이와 뒷다리를 포함한 몸 절반이 아직 못 들어갔는데도 꼼짝 않고 저러고 있습니다. '응, 그런데 밖이 보인다?' 하고 이상해하는 눈빛의 스밀라입니다. 분명히 자기는 숨었는데, 왜 밖이 보이는 걸까 알 수 없는 거겠지요. 비닐봉지 안에 부동자세로 앉아 머리만 이리저리 굴리며 궁리를 합니다. 결론은 '뭐 얼굴이 보이기는 하지만, 당분간 이대로 있자' 였는지, 비닐봉지 안에서 딴청을 부립니다. 스밀라의 엉뚱한 행동이 귀여워서 얼른 카메라를 가져와 사진을 찍어주었지만, 혼자 비닐봉지 안에서 놀게 놓아두면 위험할 수도 있지요. 이제 그만 놀고 나오라고 엉덩이를 .. 2011. 10. 30. 거침없이 담벼락 점프, 사람을 반기는 길고양이 발라당 애교로 저를 맞이해주던 길고양이, 오늘은 담벼락 저 아래서 저를 발견하더니 애옹애옹 울며 뛰어옵니다.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칠 줄 알았더니 뜻밖의 행동을 보입니다. 담벼락 계단 위를 겅중겅중 뛰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담벼락 맨 윗단에 오르기 전, 입술을 부비며 그윽한 눈길을 보냅니다. 고양이의 친근함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동네의 누군가가, 이 고양이에게 사람의 친절함을 가르쳐 주었을 테니까요. 2011. 10. 28. 이전 1 ··· 37 38 39 40 41 42 43 ··· 30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