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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의 밤은 노란색이다 사람도 길고양이도 겨울나기는 힘들지만, 그나마 길고양이에게 겨울이 반가울 수 있다면, 저녁이 길어지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은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야행성인 길고양이들은 저녁에 주로 활동하니, 해진 다음부터가 하루의 시작입니다. 몸집을 보니 아직 청소년 티를 벗지 못한 어린 길고양이입니다. 나트륨등 불빛을 의지해 거리로 나섭니다. 아마 오늘치 먹이를 구하러 나서는 길인가 봅니다. 햇빛은 무슨 색일까, 가끔 생각해보곤 합니다. 어렸을 때 그림으로 그려보던 햇님은 대개 노란색이나 빨간색이었습니다. 노란색은 그만큼 밝게 타오르니까, 빨간색은 태양이 뜨겁다고 하니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크레파스를 집어들고 칠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늦은 밤이 되어서야 외출하는 길고양이에게 크레파스를 쥐어준다면, 아마 길고양.. 2010. 11. 17.
길고양이가 선물한 가을 숲 풍경 오래된 아파트에 살면 좋은 점이 있습니다. 비록 시설이 낡아 불편하기는 하지만, 아파트가 오래될수록 화단에 심은 나무도 함께 자라거든요. 나만의 화단은 아니어도, 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곱게 단풍 드는 나무를 보고 있으면, 부자의 정원이 부럽지 않습니다. 이런 화단 근처에선 길고양이를 가끔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아파트 고양이들은 장보러 갈 때 어두운 밤길에서나 가끔 마주치곤 했는데, 이날은 웬일인지 동그랗게 식빵을 굽고 있더군요. 화단은 며칠새 찬바람에 떨어진 낙엽으로 곱게 덮였습니다. 길고양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낙엽길이지만, 덕분에 차분히 걸어볼 수 있게 되었네요. 미미하나마 바닥에 쌓인 낙엽으로 보온 효과가 있을 것 같아도 그것은 땅에 사는 벌레들에게나 도움이 될 뿐, 덩치가 .. 2010. 11. 12.
길고양이가 '낮은 포복' 배우는 이유 이제는 어엿한 청소년의 모습이 된 짝짝이 양말 고양이, 짝짝이와 어린 통키가 한 조로 낮은 포복을 훈련합니다. "에이 참, 큰 길 놔두고 왜 불편한 길로 가는 거예요?" 짝짝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입니다. 잔뜩 찌푸린 얼굴에도 짜증이 가득한 것만 같습니다. '군인도 아닌데 왜 내가 이런 훈련을 해야 하냐고요.' 억울한 통키의 눈썹이 더욱 새초롬하게 처집니다. "이런... 나는 너보다 더 따끔따끔한데도 참고 있다고. 우리가 낮은 포복을 연습하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니? 우리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덤불 아래로 다니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야. 지금은 너도 몸이 작아 아무 거리낌없이 다닐 수 있겠지만, 어른이 되어 그제야 낮은 포복을 배운다면 어디 제대로 할 수 있겠어?.. 2010. 11. 10.
쓰레기 먹는 길고양이, 씁쓸한 마음 주말이면 개미마을로 벽화를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꾸준히 만나러 가는 길고양이들이 있어 틈나는 대로 개미마을을 찾긴 하지만, 벽화가 생긴 뒤로는 사람이 붐비지 않는 평일에 들르고 있습니다. 개미마을에 벽화가 없던 시절에도 사진 찍으러 오는 이들은 드문드문 있었지만, 벽화가 생긴 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문객이 늘었습니다. 얼마 전 1박 2일에 소개된 이화동 천사날개 벽화처럼 주민들의 생활마저 곤란하게 만드는 큰 소동은 다행히 아직까진 없었던 듯하지만, 사람이 모일수록 문제도 조금씩 생겨나는 법이어서 걱정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개미마을에 들렀던 누군가가 버리고 간 패스트푸트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길고양이는 고소한 닭기름 냄새에 이끌려 다가왔는지 쓰레기봉투에 머리를 박고 빈 컵.. 2010. 11. 8.
아기 고양이, 화장실까지 따라오면 곤란해 밀레니엄 고양이 일족인 노랑아줌마가 킁킁 냄새를 맡으며 앞발로 슬쩍슬쩍 마른 땅을 고릅니다. 뭔가 맛있는 거라도 발견했나 싶어 마음이 다급해진 아기 고양이 통키는, 누가 엄마쟁이 아니랄까봐 얼른 옆으로 따라붙습니다. 눈치가 빨라야 고양이밥 한 숟갈이라도 더 획득하는 것이 길고양이 세계의 진리니까요. "엄마, 맛있는 거 혼자 먹기예요? 나랑 같이 먹어야죠!" "아니, 인석이... 그런 거 아니라니까." 엄마의 목소리가 어쩐지 좀 떨리는 것 같습니다. 더 수상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맛있는 것을 찾아다 통키에게 놓아줄 생각은 하지 않고, 슬그머니 엉덩이 높이를 낮춥니다. 엉덩이 근육에 끙차 끙차, 부르르 힘을 주는 소리도 들립니다. '아, 이건 아닌데...' 멋적은 듯 돌아서는 통키의 얼굴에 당혹감이 감도는 .. 2010. 11. 4.
아기 길고양이, 겁을 상실한 이유 아직은 수줍음 많던 밀레니엄 아기 고양이 통키가 오늘은 웬일인지 성큼성큼 거침없이 다가옵니다. 저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저도 몸을 낮추고 통키와 눈인사를 나눌 준비를 합니다. "훗~나도 이제 다 컸다고. 사람 따윈 무섭지 않아!" 은근히 여유만만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걸 보니,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한데요. ( -ㅅ-)+ 지금 표정은 어쩐지 '껌 좀 많이 씹어 본 고양이' 얼굴입니다. 길고양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어느 정도는 경계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지만, 이렇게 고양이가 그윽하게 응시할 때는 눈길을 외면하기 힘듭니다. 그냥 가만히 바라봐 줄 수밖에요. '나한테 무슨 할 말이 있는 거야?' 하면서 저도 눈빛으로 말을 건네봅니다. 사람과 고양이가 둘이 나란히 .. 2010. 1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