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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의 밤은 노란색이다 사람도 길고양이도 겨울나기는 힘들지만, 그나마 길고양이에게 겨울이 반가울 수 있다면, 저녁이 길어지기 때문일 겁니다. 사람은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만, 야행성인 길고양이들은 저녁에 주로 활동하니, 해진 다음부터가 하루의 시작입니다. 몸집을 보니 아직 청소년 티를 벗지 못한 어린 길고양이입니다. 나트륨등 불빛을 의지해 거리로 나섭니다. 아마 오늘치 먹이를 구하러 나서는 길인가 봅니다. 햇빛은 무슨 색일까, 가끔 생각해보곤 합니다. 어렸을 때 그림으로 그려보던 햇님은 대개 노란색이나 빨간색이었습니다. 노란색은 그만큼 밝게 타오르니까, 빨간색은 태양이 뜨겁다고 하니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크레파스를 집어들고 칠했던 게 아닐까 싶네요. 늦은 밤이 되어서야 외출하는 길고양이에게 크레파스를 쥐어준다면, 아마 길고양.. 2010. 11. 17.
고양이로 만든 '데칼코마니 사진' 초등학생 때 만들어보곤 했던 데칼코마니 그림 기억나시나요? 도화지를 반으로 접고 한쪽 면에 물감을 발라서 접었다 떼면 양쪽이 똑같은 대칭 그림이 나오곤 했는데, 어린아이가 해도 그럴듯한 추상미술품을 만들어주는 재미있는 기법이었죠. 고양이와 유리창만 있으면, 간단하게 데칼코마니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사진은 밤에 찍어야만 유리창이 거울 역할을 해서 고양이 몸이 대칭을 이룰 수 있어요. 물론 가운데가 떨어져 있어도 데칼코마니는 만들 수 있습니다만 너무 가운데가 뚝 끊어져 보이면 좀 어색하니까, 고양이가 유리창에 등을 기대고 있을 때 찍으면 좋습니다. 스밀라에게 같은 종족의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은 생각도 가끔 드는데 새로운 고양이가 들어왔을 때 서로 잘 적응해서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맞지.. 2010. 11. 16.
[폴라로이드 고양이] 102. 눈 뜨고, 귀 열고, 말하기 눈 가리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막고 3년. 옛날 시집살이하는 며느리가 그랬다지요? 요즘에는 그런 자세를 요구하는 집도 거의 없겠지만요. 맨 처음 저런 조각을 본 것은 한 헌책방에서였는데 그땐 원숭이 세 마리가 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답니다. 동남아 어딘가에서 만들었음직한 분위기의 조각이었죠.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일본의 고양이 카페 앞에서 저 3인방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너희는 어디서 왔니? 물어보고 싶었지만, 겁에 질린 표정의 고양이 3인방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눈 가리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막고 3년'의 자세는 약자로 취급받는 이들, 혹은 약자의 상황에 공감하는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취하는 방어 자세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나는 아무 힘이 없는데, 눈에 보이기는 하니 마.. 2010. 11. 15.
길고양이에게 “굿모닝” 인사하는 이유-설치미술가 김경화 소심한 길고양이와 눈을 맞출 기회란 드물다. 한밤중에 짝을 찾아 헤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거나, 옆구리가 터진 채 널브러진 쓰레기 봉투를 목격하고서야 그들이 가까이 있음을 알 뿐이다. 이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길고양이가 살고 있을까? 인간을 피해 숨던 길고양이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선다면 어떤 모습일까? 내가 상상으로만 그려보았던 순간을, 김경화는 대규모 설치작업으로 구현해낸다. 전시장 바닥에 머무는 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는지 계단, 담벼락, 심지어 뒤뜰까지 차지한 길고양이와 비둘기의 기세는 압도적이다. 혹시 발로 건드릴까 싶어 조심조심 아래를 살피며 걷다 보면, 조각 사이로 지뢰처럼 촘촘히 심어둔 작가의 의중이 밟힌다.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동물들과 가까이 마주할 때, 내가 발 딛고 선 땅에 인간만 .. 2010. 11. 15.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가 무릎이 아파서 걸을 수 없다 하셔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슬개골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는데 엑스레이로는 정확한 판독이 어려워 MRI를 찍었어요. 예순이 넘으셨지만 언뜻 보기엔 50대로 보일 만큼 건강하셨는데, 관절이 좋지 않으셨나 봐요.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면 어머니도 바람 쐴 겸 함께 다니자고 하셔서 그러곤 했는데, 비탈진 길을 걷거나 짐을 함께 들어주거나 하는 일이 어머니껜 무리였나 싶어서 마음도 무겁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네요. 물리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데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건강할 때 같이 여행도 가자 그러셨는데... 이래저래 착잡한 마음이 듭니다. *탐진강님, 세계유산님, 아비님, 비비안과함께님, 소풍나온 냥님, 고양사랑님, 고돌칠미키님, MAR님 Desert Rose님,.. 2010. 11. 13.
[폴라로이드 고양이] 101. 길고양이는 왜 자꾸 납작해질까? 가끔, 납작하게 몸을 낮춘 길고양이와 마주칩니다. 나이도 어린 것으로 보아, 꼬부랑 할머니가 그렇듯 노화로 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가끔 허리를 펴는 모습을 보이는 걸로 봐서 허리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런 엄폐물도 없는 거리에서 길고양이는 최대한 사람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사람의 눈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해서 그렇게 몸을 낮추고 잰걸음으로 이동합니다. 길고양이 몸이 자꾸만 납작해지는 건, 작고 가녀린 어깨에 얹힌 삶의 무게 때문이겠죠. 사람이든, 길고양이든 누구나 보이지 않는 그런 짐을 짊어메고 살아가지만, 길고양이에겐 유독 그 짐이 크고 무거운 것은 아닐까요. 길고양이 등짝 위로 커다란 짐보따리 하나 얹힌 것 같은 그런 모습을 만나는 날에는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20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