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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베개를 한 고양이, 세상 꼭대기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무심코 먼발치를 보고 있는데, 길 건너편 계단 위로 노랑 줄무늬 고양이 꼬리가 언뜻 보입니다. 버스는 다음으로 미루고 얼른 뛰어가 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달아나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고양이가 놀라지 않게 조심조심,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은 카메라로 가리면서 ‘나는 너를 보는 게 아니야’ 하고 암시를 걸며 한 발짝씩 다가갑니다. 고양이는 엉거주춤, 도망갈까 말까 하고 잠시 갈등하는가 싶더니, 슬며시 엉덩이를 붙이며 앉을 자세를 취합니다. 갈등이 담긴 엉거주춤한 자세가 사랑스러워 또 가만히 한참을 보고 있습니다. 계단 위쪽, 사람과 어느 정도 안전거리를 확보한 고양이의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져서, 팔베개를 베고 누웠습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입니다. 고양이의 조그만 동공이 향하.. 2011. 8. 30.
담벼락 위, 길고양이 삼인방을 만나다 담벼락 위로 고양이 머리 셋이 삐쭉. 오래간만에 볕 좋은 날이 와서 고양이들도 눅눅해진 털을 말리고 있던 모양입니다. 담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얼른 쫑긋해진 귀를 들어 이쪽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포토샵 도장툴로 꾹 찍어낸 것처럼 꼭 닮은 녀석 둘이 동시에 쳐다보니, 녀석들 마음엔 긴장이 감돌겠지만 어쩐지 익살스럽게 보입니다. 겁 많은 한 녀석은 담벼락 아래, 더 안전한 곳으로 뛰어내리고, 어린 흰 고양이도 처음엔 멀찍이 달아났다가 이쪽으로는 인간이 오기 힘들겠다 싶었던지 안심하고 눈을 감아봅니다. 어른 고양이가 인간을 등지고 무심히 앉아있다는 건, 안전하다는 증거입니다. 고양이도 그 정도쯤은 눈치로 알고 있습니다. 어른 고양이의 힘을 믿고, 마음놓고 이쪽을 관찰하는 어린 고양이. 인간이 무서.. 2011. 8. 29.
스크래처 뗏목을 탄 고양이, 스밀라 1년 넘게 스밀라의 스크래처로 잘 써왔던 가죽의자를 내다버렸습니다.(첫 사진은 작년 9월 스밀라 모습^^) 등받이 나무 부분이 망가져서 사람이 앉을 수 없기도 하고, 스밀라가 오며가며 이 의자에 주로 발톱자국을 남기는 바람에 어영부영 스밀라의 간이 전망대 겸 스크래처가 되어주었던 물건인데, 이사하면서까지 이 의자를 갖고 갈 수는 없을 듯하고 집을 내놓고 나서, 집 보러 올 사람들도 생각해서 겸사겸사 치워버렸더니 스밀라가 발톱 갈 만한 장소를 찾지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한동안 넣어두었던 스크래처를 꺼내서 바닥에 놓아주니 이제 아쉬운대로 이걸 쓰고 있습니다. 오늘 오전엔 나와봤더니 이렇게 뗏목처럼 올라앉아 있네요. 원래 벽걸이용 스크래처라 무게가 가벼워서 스밀라가 발톱을 긁으려면 온몸의 체중을 싣고 올라가서.. 2011. 8. 28.
어느 횟집 앞 '길고양이 급식소' 풍경 어머니와 함께 떠난 부산 여행, 아침 골목길을 걷다 횟집 앞에서 길고양이와 마주칩니다. 저와 눈이 마주치고도 달아나지 않는 모습이, 근처에 밥 챙겨주는 분이 있는 모양입니다. 유리문에 접착시트를 붙인지 오래되어, 원래 있던 짙푸른색 바다가 하늘색으로 변한 횟집 문 뒤에는 까만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더 숨어 있었습니다. 경계하는 눈빛을 빛내며 몸을 숨기고 한쪽 눈만 내놓은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두 마리 고양이가 횟집에 차려진 길고양이 급식소에서 밥을 먹다가 저와 눈이 마주친 것입니다. "내가 망을 볼 테니, 얼른 다 먹고 나서 자리를 바꿔주라고." 5:5 가르마를 탄 흰 고양이가 든든한 얼굴로 바깥을 지킵니다. 곁을 지키는 친구 덕분에, 노란 얼룩무늬 고양이는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붉은색.. 2011. 8. 27.
깊은 밤, 스밀라의 거울공주 놀이 깊은 밤, 책꽂이 동산 위에 올라 발아래를 그윽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스밀라입니다. 저 위에 있으면 아주 작은 스밀라도 무척 키가 커집니다. 높은 곳에 있어서 한층 더 커진 스밀라의 자신감이,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밑에서 올려다보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더욱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저 위에서 저를 내려다보는 고양이의 모습은 마치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알고 있는 현자 같습니다. 어두운 밤이 되면 이 자리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보게 됩니다. 회색빛 거울 속에는 또 다른 스밀라가 있습니다. 스밀라의 시선은 아득하게 창 건너편, 제 방 안쪽의 어딘가를 향하지만 거울 속의 다른 고양이가 그런 스밀라를 마주봅니다. 이제 책꽂이 캣타워 위에서 스밀라의 거울공주 놀이를 볼 시간도 그리 많이.. 2011. 8. 21.
쌍둥이 길고양이와 삐친 담양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꼭 닮은 길고양이 일호, 이호가 지내는 지붕 쉼터에, 오늘은 웬일인지 일호가 보이지 않습니다. 노랑둥이 담양이가 담담한 얼굴로 이호의 곁을 지킵니다. 살포시 팔짱 낀 모습이 앙증맞은 담양이입니다. 그때 언제 내 이야기를 했느냐는 듯, 일호가 슬그머니 엉덩이를 붙이며 끼어듭니다. 원래부터 여기는 내 자리였다는 듯, 이호 옆을 지킵니다. 오래간만에 이호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던 담양이, 약간 놀란 눈빛으로 일호를 바라봅니다. 조금은 마음이 불편한 것일까요? 급기야 자기에게 가장 익숙한 담장 위로 뛰어내리고 마는 담양이입니다. 일호, 이호와 담양이는 서로 무늬는 다르지만 평소 사이 좋게 지냅니다. 이날도 지붕이 그리 좁지 않으니 세 마리가 함께 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인간의 마음으로 .. 2011. 8. 19.